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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전에 자취방 짐을 다 꺼내봤다

    이사 날짜가 잡히고 나서야 짐 정리를 시작했다. 4년을 산 자취방인데, 막상 다 꺼내보니 내가 이런 걸 갖고 있었나 싶은 게 한가득이었다. 침대 밑에서 나온 박스 하나는 이사 올 때 그대로 안 뜯고 4년을 묵힌 거였다.

    그 박스를 여는데 좀 웃겼다. 대학 때 쓰던 전공 책, 한 번도 안 쓴 텀블러 세 개, 어디서 받았는지 모를 머그컵들. 4년 동안 한 번도 안 찾았는데 없어서 불편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 없어도 되는 짐을 이사비 줘가며 한 번 옮겼던 셈이다.

    옷장도 화근이었다. 안 입는 옷이 절반이 넘었다. 버릴 건 버리고, 멀쩡한 건 헌옷수거함에 넣고, 책은 중고서점에 박스째 가져갔다. 책값으로 만 얼마 받았는데, 무게로 따지면 그냥 가져가 준 게 고마운 수준이었다.

    제일 오래 잡고 있던 건 버리지도 쓰지도 못하는 물건들이었다. 첫 직장에서 받은 사원증, 옛날 친구가 준 편지, 고장 난 손목시계 같은 것들. 이런 건 결국 작은 상자 하나에 추려 담았다. 다 버리자니 마음이 그렇고, 다 두자니 짐이 되니까.

    이틀에 걸쳐 정리하고 나니 방이 휑했다. 짐을 다 빼놓고 보니 이 방이 원래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 4년 동안 짐에 둘러싸여 산 거지, 방이 좁았던 게 아니었다.

    이사 가는 집은 지금보다 조금 좁다. 그래서 짐을 줄여야 했던 건데, 막상 줄이고 나니 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짐이 많았던 게 문제였다는 걸 알았다. 새집에선 안 뜯는 박스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글쎄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 하루 만 보 걷기를 시작하고 운동화가 닳았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운동 부족’이라고 적혀 나온 걸 보고 뜨끔했다. 헬스장은 등록만 하고 안 나갈 게 뻔해서, 일단 돈 안 드는 걸로 시작하자 싶어 하루 만 보 걷기를 정했다. 폰에 만보기 앱이 이미 깔려 있길래 그냥 그걸 켰다.

    첫날 퇴근하고 재보니 하루 종일 4천 보 정도밖에 안 걸었더라. 사무실에 앉아만 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저녁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해 하천 산책로까지 갔다 오니 딱 만 보가 채워졌다. 한 시간쯤 걸렸다.

    처음 며칠은 솔직히 귀찮았다. 비 오는 날엔 안 나가고 싶어서 핑계를 댔고, 야근한 날은 그냥 건너뛰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닷새는 채우자고 느슨하게 잡으니까 부담이 덜했다. 매일 못 채워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한 2주쯤 지나니까 걷는 코스가 익숙해졌다. 하천을 따라 걷다 보면 같은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익었다. 강아지 데리고 나오는 아저씨, 빠르게 걷는 운동복 차림의 아주머니. 인사를 하진 않아도 묘하게 동네에 소속된 기분이 들었다.

    한 달쯤 지나니 운동화 밑창이 한쪽이 닳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좀 뿌듯했다. 몸무게가 확 빠지거나 한 건 아닌데, 잠은 확실히 잘 잤다. 예전엔 자정 넘어 뒤척였는데, 걷고 온 날은 11시면 눈이 감겼다.

    거창한 변화는 없다. 여전히 야근하면 못 걷고, 만 보를 못 채우는 날도 많다. 그래도 결과지 보고 뜨끔하던 그때보단 몸이 가볍다. 닳은 운동화를 보면서 그래도 이만큼은 걸었구나 싶어 다음 켤레는 좀 좋은 걸로 살까 고민 중이다.

  • 배달앱을 지우고 2주 동안 직접 해 먹었다

    배달앱 두 개를 지웠다.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고, 그냥 어느 날 주문 내역을 봤다가 깜짝 놀라서였다. 지난 한 달에 배달로만 32만 원을 썼더라. 한 번 시킬 때 배달비에 최소주문금액 맞추느라 안 먹어도 될 사이드까지 담은 게 쌓인 결과였다.

    그래서 2주만 배달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첫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습관처럼 폰을 들었다가 앱이 없는 걸 보고 멈칫했다. 결국 냉장고를 열었는데 계란이랑 시들어가는 대파, 안 뜯은 햇반 몇 개가 전부였다. 그날은 계란밥에 김으로 때웠다.

    다음 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한참 헤맸다. 평소 같으면 그냥 시켜 먹던 김치찌개를 직접 끓여보겠다고 돼지고기 한 근, 두부, 김치를 샀다. 다 합쳐서 만 원이 안 됐다. 배달로 시키면 만 오천 원은 줘야 하는 양이었다.

    요리는 서툴렀다. 김치찌개는 간이 안 맞아 짜기만 했고, 계란찜은 물 조절을 못 해서 멀게졌다. 그래도 두세 번 하니까 조금씩 나아졌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김치를 먼저 볶으니까 확실히 맛이 달랐다.

    2주 동안 한 번도 안 시킨 건 아니다. 한 번은 도저히 하기 싫어서 동네 중국집에 직접 전화해서 포장해 왔다. 그래도 배달앱 켜고 30분씩 메뉴 고르며 끌려다니던 거랑은 달랐다. 내가 먹을 걸 내가 정한다는 감각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2주가 지나고 식비를 계산해보니 절반도 안 됐다. 무엇보다 냉장고에 재료가 떨어지면 장을 보고, 있는 걸로 뭘 해 먹을지 궁리하는 그 흐름이 생긴 게 컸다. 배달앱은 아직 안 깔았다. 가끔 그립긴 한데, 일단은 이대로 좀 더 가보려고 한다.

  • 중고로 책상을 사러 갔다가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방을 바꾸면서 책상이 필요했다. 새것은 부담스러워서 중고 거래 앱을 뒤졌다. 마침 두 정거장 거리에 큰 원목 책상이 3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사진으로 봐도 튼튼해 보여서 바로 연락했다.

    판매자는 이사를 앞둔 50대쯤 되는 분이었다. 약속한 집에 가니 책상은 사진보다 더 멀쩡했다. 다만 다리 한쪽에 자잘한 흠집이 있었는데, 그분이 먼저 “여기 애들 어릴 때 낙서한 자국”이라고 멋쩍게 설명해줬다.

    책상을 들고 나오려는데 그분이 차 한잔하고 가라고 붙잡았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거절하기도 뭐해서 식탁에 앉았다. 알고 보니 그 책상에서 두 아이가 다 공부를 했고, 이제 둘 다 독립해서 집을 줄여 이사 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3만 원짜리 중고 책상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긴 시간이 담긴 물건 같았다. 괜히 더 조심히 들고 나왔다.

    지금 그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리의 낙서 자국은 일부러 안 지웠다. 가끔 그 흠집을 보면, 잠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던 그 집 식탁이 떠오른다. 중고 거래에서 이런 걸 얻을 줄은 몰랐다.

  • 평일 새벽에 혼자 동네 뒷산에 올라봤다

    잠이 안 오는 날이 늘었다. 새벽 다섯 시쯤 멀뚱멀뚱 천장만 보다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야트막한 뒷산이 있는데, 그 동네에 5년을 살면서 한 번도 안 올라가 봤다.

    입구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다들 나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갔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도 있었다. 새벽 산에 이런 세계가 있는 줄은 몰랐다.

    정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봉우리까지는 30분쯤 걸렸다. 중간에 숨이 차서 두어 번 멈췄다. 막상 올라가서 본 풍경은 대단할 것도 없었다. 그냥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는, 흔한 전망이었다.

    그런데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간이라 하늘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휴대폰을 안 보고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뒤로 잠이 안 오는 날엔 그냥 산에 간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쯤. 불면증이 나은 건 아니다. 다만 뜬눈으로 누워 뒤척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벽 공기를 마시는 게 낫다는 걸 알게 됐다.

  • 무지출 챌린지 일주일, 셋째 날에 무너졌다

    월말이 되면 늘 통장이 휑했다. 큰돈을 쓴 것도 아닌데 자잘하게 새는 돈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달엔 일주일만이라도 한 푼도 안 쓰는 무지출 챌린지를 해보기로 했다. SNS에서 다들 성공했다길래 나도 쉬울 줄 알았다.

    첫날과 둘째 날은 의외로 할 만했다. 집에 있는 재료로 밥을 해 먹고, 커피는 회사 탕비실 믹스로 때웠다. 돈을 안 쓰니까 묘하게 뿌듯했다. 이대로면 일주일은 그냥 가겠다 싶었다.

    셋째 날 점심에 무너졌다. 동료들이 갑자기 새로 생긴 국밥집에 가자고 했고, 나 혼자 도시락이라며 빠지기가 영 어색했다. 결국 따라가서 9천 원짜리 순대국밥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숟가락을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그날 저녁엔 좀 허무했다. 고작 국밥 한 그릇에 일주일 계획이 무너졌으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애초에 한 푼도 안 쓰겠다는 목표 자체가 내 생활이랑 안 맞았던 것 같았다. 사람을 안 만나고 살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규칙을 좀 바꿨다. 약속 있는 날은 빼고, 혼자 있는 날만 무지출을 지키기로. 그렇게 하니까 한 달에 며칠은 자연스럽게 돈을 안 쓰게 됐다.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달 말엔 통장이 덜 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