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odynvale

  • 중고로 책상을 사러 갔다가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방을 바꾸면서 책상이 필요했다. 새것은 부담스러워서 중고 거래 앱을 뒤졌다. 마침 두 정거장 거리에 큰 원목 책상이 3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사진으로 봐도 튼튼해 보여서 바로 연락했다.

    판매자는 이사를 앞둔 50대쯤 되는 분이었다. 약속한 집에 가니 책상은 사진보다 더 멀쩡했다. 다만 다리 한쪽에 자잘한 흠집이 있었는데, 그분이 먼저 “여기 애들 어릴 때 낙서한 자국”이라고 멋쩍게 설명해줬다.

    책상을 들고 나오려는데 그분이 차 한잔하고 가라고 붙잡았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거절하기도 뭐해서 식탁에 앉았다. 알고 보니 그 책상에서 두 아이가 다 공부를 했고, 이제 둘 다 독립해서 집을 줄여 이사 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3만 원짜리 중고 책상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긴 시간이 담긴 물건 같았다. 괜히 더 조심히 들고 나왔다.

    지금 그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리의 낙서 자국은 일부러 안 지웠다. 가끔 그 흠집을 보면, 잠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던 그 집 식탁이 떠오른다. 중고 거래에서 이런 걸 얻을 줄은 몰랐다.

  • 평일 새벽에 혼자 동네 뒷산에 올라봤다

    잠이 안 오는 날이 늘었다. 새벽 다섯 시쯤 멀뚱멀뚱 천장만 보다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야트막한 뒷산이 있는데, 그 동네에 5년을 살면서 한 번도 안 올라가 봤다.

    입구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다들 나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갔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도 있었다. 새벽 산에 이런 세계가 있는 줄은 몰랐다.

    정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봉우리까지는 30분쯤 걸렸다. 중간에 숨이 차서 두어 번 멈췄다. 막상 올라가서 본 풍경은 대단할 것도 없었다. 그냥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는, 흔한 전망이었다.

    그런데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간이라 하늘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휴대폰을 안 보고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뒤로 잠이 안 오는 날엔 그냥 산에 간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쯤. 불면증이 나은 건 아니다. 다만 뜬눈으로 누워 뒤척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벽 공기를 마시는 게 낫다는 걸 알게 됐다.

  • 무지출 챌린지 일주일, 셋째 날에 무너졌다

    월말이 되면 늘 통장이 휑했다. 큰돈을 쓴 것도 아닌데 자잘하게 새는 돈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달엔 일주일만이라도 한 푼도 안 쓰는 무지출 챌린지를 해보기로 했다. SNS에서 다들 성공했다길래 나도 쉬울 줄 알았다.

    첫날과 둘째 날은 의외로 할 만했다. 집에 있는 재료로 밥을 해 먹고, 커피는 회사 탕비실 믹스로 때웠다. 돈을 안 쓰니까 묘하게 뿌듯했다. 이대로면 일주일은 그냥 가겠다 싶었다.

    셋째 날 점심에 무너졌다. 동료들이 갑자기 새로 생긴 국밥집에 가자고 했고, 나 혼자 도시락이라며 빠지기가 영 어색했다. 결국 따라가서 9천 원짜리 순대국밥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숟가락을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그날 저녁엔 좀 허무했다. 고작 국밥 한 그릇에 일주일 계획이 무너졌으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애초에 한 푼도 안 쓰겠다는 목표 자체가 내 생활이랑 안 맞았던 것 같았다. 사람을 안 만나고 살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규칙을 좀 바꿨다. 약속 있는 날은 빼고, 혼자 있는 날만 무지출을 지키기로. 그렇게 하니까 한 달에 며칠은 자연스럽게 돈을 안 쓰게 됐다.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달 말엔 통장이 덜 휑하다.